요한복음6장60절-61절 “받아들이기 어려운” 2020년 12월 24일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론 공감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말이 들릴 때에는 불편한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감정이 커지면서 거부 반응이 생깁니다. 이런 감정의 변화를 오늘 본문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의미보다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렵기에 누가 들을 수 있느냐’를 단순히 말을 어렵게 해서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이해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수수께끼같은 말을 해서 혼란을 부추기지 않으셨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심으로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태도는 단순한 실망을 넘어 거부 반응이 매우 강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61절은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이 수군거림은 ‘불평’을 내뿜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는 예수님 말씀이 매우 불편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말씀이라도 얼마든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훌륭한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듣는 입장에서만 말씀을 평가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뭔가 이상하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고쳐야 하느냐란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제자들 입장에 선다면 예수님이 지금 뭔가 크게 잘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방법을 바꾸든지 내용을 고치든지 해서 제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하시면서 자신의 말에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걸림이 되다’는 것은 목에 걸린 음식처럼 불쾌하다는 의미입니다. 넘기든지 뱉어내든지 해야 편한데 걸린 상태로 있으면 그것 자체가 괴로운 일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런 불편한 상태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말이 걸림이 되느냐’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옳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항상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부담을 안고 들어야 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부담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불편하게 하거나 심지어 불쾌하게 만드는 말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제자들처럼 ‘이 말씀이 어려워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하지는 않고 있나요?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만을 듣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마음을 불편하게 해도 귀를 닫는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어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걸린다면 그냥 지나치거나 외면하기보다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 우리에게 독이 아닌 보약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게 해 주는 말씀을 쓰다고 내뱉지 말고 곱씹어보면서 소화해낸다면 우리는 오늘도 말씀 속에서 성장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