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희망 고문’이란 말이 있습니다. 거짓된 희망을 품게 해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희망이란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거짓된 희망이라도 갖고 싶어집니다. 안될 것을 알면서도 그거라도 붙들고 싶어지는 심정이 생깁니다. 문제는 이것을 악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거짓된 희망임에도 진짜처럼 속여서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가난과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빈부의 격차는 극대화되었고 경제 활동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행하셨으니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 따르면 이제는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품은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희망에 동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희망을 이용해서 정치 세력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진짜 희망을 보게 하시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으며 예수님을 떠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진짜 희망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란 말씀으로 진짜 희망이 무엇인지를 비유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어떻게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느냐란 오해를 살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무엇이 진짜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리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음식과 물을 가장 소중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에 매달리게 되면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놓치는 일이 생깁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유대인들의 정서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매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양식과 음료가 나타났음에도 일시적인 생명만을 연장시켜주는 음식과 물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깨우치기 위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란 특단의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과 피’란 이미지로 진짜 양식과 음료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은 진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짜는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인한 영생입니다. 이것을 믿게 되었다면 이제부터 참된 양식과 음료를 먹은 자로서 세상의 모든 일시적인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란 진짜 양식과 음료가 우리 안에 들어왔기에 이제부터는 일시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영적으로 싸울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진짜이기에 우리를 현혹하는 모든 그릇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서 세상에 진짜 희망을 심어주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