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분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이 분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제자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섣부른 판단과 미숙한 이해는 선입견을 만들어내고 편견에 사로잡혀 왜곡된 시각을 갖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약점을 잘 아시기에 기회가 있는대로 올바른 시각을 심어주시려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는 본문 저자의 해설은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시험’이란 말은 ‘합격 또는 불합격’의 개념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을 뜻합니다. 빌립을 시험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이해를 더 깊고 넓게 하시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를 내놓고 학생들을 당황시키거나 기를 죽이려는 심술궂은 선생의 모습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과연 예수님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지금 점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영적 진단을 위한 질문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몰려드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입니다.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은 떡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떡은 치료받고 나서 먹어도 됩니다. 치료받고나서 집에 돌아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조금은 엉뚱한 질문을 하십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떡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것도 빌립을 콕 집어서 이 질문을 던지신 예수님의 모습에 아마도 옆에 있던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지금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인가란 의구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생뚱맞게 ‘음식’ 문제로 제자들을 시험하십니다. 이것은 질병 치료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저자는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는 해설로 질문 의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란 부분은 제자들에게 답을 찾아보라고 질문하신 것이 전혀 아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해 제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좋은 답을 찾아내려 했던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어떻게 하실지를 다 알고 계신 상황에서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살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받아든 예수님의 질문처럼 말입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느냐’란 질문은 제자들의 실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감당못할 일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절호의 기회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진단 검사를 이런 사건과 사고를 통해 받게 됩니다. 인생의 어려운 질문 앞에서 과연 우리가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는지를 점검받게 됩니다. 힘들고 지쳐 있는 우리 입장에서 영적 진단 검사를 꺼려하거나 귀찮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괴로운 현실 앞에서도 더욱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건강을 회복하거나 유지 또는 향상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방식입니다. 영적 진단 검사를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을 더욱 더 신뢰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