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6장43절-46절 “이끌지 아니하시면” 2020년 12월 17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유일한 아들이심을 증거하자 유대인들은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낱 사람에 불과한 존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더 깜짝 놀랄만한 주장을 펼치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입니다. ‘이끌다’는 것은 우물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적극적으로 끌어당기는 행위를 묘사한 것인데, 유대인 입장에서는 매우 분개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긍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을 이끄시고 있다고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그들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고 있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내게 오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아버지께서 이끈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유대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장에 분개했던 그들의 마음에 기름을 붓는 행위를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에게 와야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회심을 촉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 예수님에게 와야만 그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강력히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오는 문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을 만나듯이 가볍게 생각할 사안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로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이 필수적으로 개입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에게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에게 오는 행위는 하나님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끊임없이 ‘내게로 오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외침을 듣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변화를 일으키실 수 있음을 예수님이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과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이란 말씀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예수님에게 오는 것과 하나님이 개입하셔야만 된다는 것을 모순으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예수님에게 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듣는 동안에 얼마든지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우리의 자유가 빼앗기는 쪽으로 받아들이면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조금도 상충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님에게 왔을 때에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실제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을 해야만 하나님이 얼마나 세심하게 인도하셨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에게 온 자들에게 무엇이 주어지나요?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고 하셨듯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에게 오는 이들의 가장 큰 축복은 ‘부활’입니다.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란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을 얼마나 확신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 오는 인생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이끌어 예수님에게로 오게 하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볼 때에 세상에서 조금 부족하게 살고 건강하지 못하게 지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인생은 우리가 가진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조금 고생하고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예수님 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확신한다면 여기서 의젓하게 모든 것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임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