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6장38절-40절 “명확한 뜻” 2020년 12월 15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을 때에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더욱 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모호한 상황에서 자주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고 그것을 알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보니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은 자주 퍼즐처럼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모호하거나 애매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선명하고 분명했습니다. 39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에서 그 선명성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40절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뜻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명확히 전달되는 것이 특징임을 우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뜻은 너무도 명확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그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정도로 거대했습니다. ‘내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일’이 어찌 쉬울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고난과 십자가란 죽음의 골짜기를 혼자서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신 예수님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갖는 처절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만 알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한 뜻에 우리는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을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버거울지를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의 심리에는 시행착오 없이 고속도로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주의 뜻대로 살기로 했네’란 찬송을 부르지만 손해보고 희생해야 한다면 과연 즐겁게 부를 수가 있을까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 잘 풀리는 것으로만 여겨질 때 이런 불편함이 생깁니다. 더 나은 삶이 보장이 된다면 기꺼이 지금 고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확한 뜻은 항상 모호하게 들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이 땅에서 분명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고집스러움을 포기해야만 하나님의 뜻은 선명하게 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란 질문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는가’란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막중한 책임감을 견뎌내야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있을 때에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명확한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위해 전심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