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은 당시 유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냐를 놓고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관심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해낸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먹고 배부른’ 경험을 했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하시면서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먹고 배부른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다시 먹고 배부른 경험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이 채워져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30절인데,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란 질문에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믿음’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믿을만한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불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먹고 배부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당신을 믿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31절,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해 주셔야만 한다는 강력한 압박을 예수님에게 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당장이라도 먹고 배부를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단지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실제적인 근거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현실적인 열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무슨 기적을 행하시든 자신들에게 유익한 쪽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가난은 당시 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기에 이것을 해결하는 기적만을 원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꼭 예수님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누구든 자신들의 열망을 채워줄 수만 있다면 따르겠다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삶의 가장 힘든 부분을 해결해 주셨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참으로 복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돈과 권력으로 채우려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채운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쌓아놓은 좋은 스펙(경력)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만한 근거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것도 채워주지 않으면서 자꾸 믿으라고만 하시면 안된다는 불만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세상 것으로 채움받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면 이런 불만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우리의 유익으로 판단하면 신앙적으로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믿을만한 근거를 다 주셨기에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우리에게 있을 때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꿋꿋이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