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6장14절-15절 “어떤 왕으로 오셨는가” 2020년 12월 2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그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병고치는 능력이 탁월한 명의로 소문이 난 예수님이 이제는 한 아이의 식량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행하시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14절,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이것은 서로 물어본 것이 아니라 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가 바로 자신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제공한 예수란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어떤 병도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식량 문제까지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를 눈 앞에서 확인했으니 그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1:21을 보면,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출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해낼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 선지자’가 맞는지 꼭 확인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에 이어 예수님을 향해 ‘그 선지자’란 칭호를 부여한 것을 보면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로마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맞서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실력자가 눈 앞에 있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예수님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움직임을 15절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다스렸던 왕이 있었는데, 이제는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한 것입니다. 로마가 임명한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왕을 추대하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여긴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삼으려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면 질병과 기근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모든 주변 강대국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음성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도 고치고, 사업도 잘되고, 미래가 보장된다는 이야기 앞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입니다. 15절,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뿌리치시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시지 않으셨기에 이렇게 거절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유대인 뿐 아니라 세상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피하셨을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시 위해 오신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질병과 기근을 해결하지 않으시고 고난의 길과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실천하실 왕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질병과 기근을 해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사람들을 포용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가 질병과 기근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방식임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의 삶의 방식이란 점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사랑과 용서로 질병과 기근, 전쟁과 파괴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품으신 것처럼 교회도 낮은 자세로 사람들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우리의 삶의 참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