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6장1절-4절 “따르는 이유” 2020년 11월 26일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동네 아이들과 구슬치기하면서 놀던 시절이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구슬이 많은 친구는 큰 부자라도 된 듯이 으스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친구는 동네에서 인기도 많고 그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녔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로 음식 잘 먹는 것 하나로 수많은 팔로워(특정한 사람이나 업체 따위의 계정을 즐겨 찾고 따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을 거느리는 것을 봅니다. 소위 ‘페북 스타’(SNS ‘페이스북’에서 다수의 팔로워를 확보해 유명한 사람을 가리킴)들이 있습니다. 마치 연예인처럼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면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는 이들이 인터넷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그냥 좋아서 따르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아픈 사람이 추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어떤 병에 대해서 최고의 권위자란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듭니다. 그 의사를 만나면 치료될 것 같은 신뢰감이 환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런 신뢰감을 갖고 예수님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커다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을 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사람들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죽음 직전에 있던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료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또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치료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기에 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유대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다양한 병을 갖고 있던 환자들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의 거리를 유지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란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그들과 떨어져 계셨음을 말해줍니다. 물론 사람과의 거리 두기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을 싫어하셔서 피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멀리 도망가신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너무도 잘 알고 계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예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 있던 ‘제자들’은 어떤 이들인가요? 이들은 병을 잘 고치는 예수님의 능력 때문에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 자체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 자체를 배우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서 예수님을 추종하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 자체를 배우려는 자세로 그를 추종해야 합니다. 어떤 필요에 의해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필요가 채워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필요를 찾아내서 그것을 채워달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를 따르면서 배우는 삶의 자세는 사라지고 어떤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분이 아닌 우리의 전부가 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