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베데스다 연못은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소문이 난 상태였습니다. 어떤 병도 낫게 만든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천사가 연못의 물을 움직인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에게만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환자들에게는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연못 주변을 차지한 상태에서 오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그 곳을 방문하셨는데, 유독 한 환자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저자는 그에 대해 짤막하게 “서른 여덟 해 된 병자”라고만 소개합니다. 6절은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라 했는데,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나타냅니다. 8절에서 환자 스스로 말하기를,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라는 점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이런 상태로 보낸 환자로서 어떤 감정과 정서를 갖고 있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한 가닥 희망의 끈만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벼랑 끝에 몰리더라도 일시적이라면 견딜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무려 40년 가까이 지속된다면 과연 어느 누가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바늘귀만큼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사람은 그것이라도 붙들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희망 고문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명명하든 희망은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동력인 것은 사실입니다. 본문의 환자도 이런 희망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날도 그런 기대를 안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전 본 적이 없는 젊은 청년이 다가와 “네가 낫고자 하느냐”란 질문을 던집니다. 뭔가 도와주고 싶어하는 뉘앙스를 강렬하게 느낄 정도였습니다. 환자는 이 젊은이의 말을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것은 도와주고 싶다면 지금이 아니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고 정말 도와주고 싶으면 물이 움직일 때까지 옆에 있어줄 수 있느냐고 되묻는 것입니다.
지금 앞에 있는 젊은이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것처럼 해놓고는 정작 물이 움직이는 시점에는 아무도 옆에 없었음을 한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내심을 갖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당사자 말고 누가 있겠느냐는 절망감도 묻어납니다. 희망은 오직 하나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 뿐인데 너무도 경쟁률이 높아 그것을 뚫고 소원 성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과연 자신에게 이루질까란 의구심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젊은이를 보면서 희망의 끈을 더욱 동여매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당장 일어나라는 명령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 것입니다. 멀리만 느껴졌던 새로운 인생이 당장 눈 앞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이 젊은이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독자인 우리는 이 분이 바로 예수란 사실을 알고 이 장면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거저 주어진 새로운 인생을 우리로 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시작입니다. 은혜는 이렇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옵니다. 시간, 장소, 기회를 계산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에 어느날 갑자기 은혜란 이름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위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의 힘은 이렇게 강력합니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도록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새로운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은혜의 강력한 힘이 이끄는대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