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5장39절-40절 “성경을 읽는 이유” 2020년 11월 23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유대인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히브리 성경인 구약 성경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보물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모세가 가르쳐준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신명기6:6-9절은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희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심을 예수님도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본문3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 연구’에 대한 열정만 본다면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확실한 목적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생명을 주는 책이란 사실을 유대인들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 연구와 목적 의식을 공유하셨습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그들의 자세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란 말씀으로 유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측면을 드러내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목적이 생명을 얻기 위함인데, 이 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니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분노할 일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한 부분도 아니고 전체가 예수님을 증언한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거절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과 예수님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책인 반면 예수님은 다른 유대인과 같은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던 유대인을 향해 ‘영생을 얻기 위해 나에게 와야 한다’고 하시니 얼마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었던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시각으로 성경을 재조명하지 않은 점입니다. 구약 성경이 영생을 주는 책인 것을 인정했지만 그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구약 성경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함을 우리는 여기서 충분히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심장은 이스라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없는 상태로 구약 성경을 연구하고 위대한 글을 쓰는 것은 심장 없는 사람으로 걸어다닌 것과 같습니다. 생명 없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 도덕적인 삶의 모델을 발견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허무할 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목적이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구약과 신약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고 계심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열매가 온 세계에 퍼져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면 생명의 사역은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 노력을 꾸준히 해나갈 때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