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5장37절-38절 “불신의 늪” 11/20/2020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친아들임을 강력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음을 전하셨습니다. 30절, “나를 보내신 이”와 36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에 이어 본문37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38절, “그가 보내신 이” 등의 말씀은 강력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너무도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보내셨고, 친히 증언하시는 대상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이란 죄목으로 정죄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냐 거절할 것이냐란 갈림길에 서 있지만 그들은 거절하는 입장에 서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은 지금 불신의 늪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38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는 예수님의 진단은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친아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집 안에 거하듯이 말씀이 그들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것이 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씀을 듣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말씀이 그들 속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들은들 마음 속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친히 보내신 이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불신’이란 단어로 규정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크기에 하나님의 말씀 또한 그들 속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전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친아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친아들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친아들이시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불신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불신의 늪에 빠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친아들로 믿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화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분리된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던 모습은 교회사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훌륭한 도덕 선생으로, 하나님보다는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그릇된 신학들이 난무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일뿐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지금도 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신앙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의 늪이 의외로 깊고도 넓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유일한 친아들되심을 인정하고 있나요?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나요? 우리는 오늘도 불신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