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에게 생명이 주어지느냐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그의 음성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교와 기적을 통해 드러내셨지만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은 그의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인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느냐에 대해 심판 이야기를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을 거절했으니 심판을 피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엄중한 메시지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체를 거절했기에 심판의 메시지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이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한 증언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직접 하시기에 참일 수 밖에 없다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증언이 참이기에 예수님의 설교를 무시하는 행위는 너무도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했기에 그 위험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던 유대인들도 인정했던 인물이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기 위해 유대인들은 유대 광야로 몰려갔을 정도입니다.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참된 메시야이심을 증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메시지를 들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요한을 인정해도 예수님만은 인정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면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요한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증언한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강력히 외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는 목적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하고 영접해야 구원이 주어집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세례 요한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들 예수님을 거절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뺀 채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례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구원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때부터 섬겼던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만 그것은 모래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인들은 반드시 그분을 인정하고 영접해야만 합니다. 다른 선택은 절대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란 증언은 유대인만이 들을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로서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산다면 어떤 누구에도 구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상 다른 선택은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영생을 얻을 길은 없습니다. 이 엄중한 구원의 증언을 교회와 성도들은 확신을 갖고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무시하거나 예수님 말고 다른 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는 한낱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할 뿐입니다. 교회의 위상은 철저히 예수님 위에 세워짐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구원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