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성경은 66권으로 구성된 거룩한 책인데 우리가 어떤 부분을 읽고 묵상할 때 주의할 점은 그것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각 부분은 좀 더 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란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금 심판하신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 편에서는 ‘듣는 대로 심판한다’고 하시고, 다른 편에서는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라고 하신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심판의 현재형과 미래형을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각적인 심판과 유예된(최종) 심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즉각적인 심판은 구원과 함께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이것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목적으로 합니다. 반면, 유예된 심판은 구원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최종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듣는 대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 여기서 그의 음성을 듣는 일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지금 여기서 판단을 하신다면 과연 의로운 것일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이것을 의심했습니다. 무슨 권위로 남을 판단하느냐라고 따지듯이 다그쳤습니다. 예수님은 ‘심판하는 권한’을 자신이 갖고 있다고 하시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의 근거를 대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임의대로 판단하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음을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슨 근거로 세상을 판단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은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라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뜻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비교하면서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있음을 자신있게 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듣는 대로’ 심판하신다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들은대로 예수님은 세상에서 설교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지금 설교를 통해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있음을 외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누구의 뜻을 따를 것인가란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의 뜻이 서로 다를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를 놓고 쉽게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우리 자신의 생각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론적으로 보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답을 내립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 속에 들어가면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지만 우리의 이익이 달린 일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지금은 이익을 선택하고 나중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하나의 보험같은 것이 되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십니다. 이런 삶의 자세를 끝까지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의지로 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부딪힐 때마다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가 있음을 삶 속에서 배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