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5장21절 “살리는 사역” 2020년 11월 10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시느냐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이 질문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붙들고 있습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으로 시작해서 20:31,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로 끝맺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3: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은 생명의 특징이 ‘영생’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생에 이르는 길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짐을 복음서는 강력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문5:21은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란 좀 더 직접적인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를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살리는 사역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살리는 사역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어 생명의 세계로 진입케 하는 것이 살리는 사역입니다. 수가성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 이야기를 하실 때에 이런 관점이 진하게 묻어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4:14,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말씀은 살리는 사역이 얼마나 지속적인지를 샘물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역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독특한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란 말씀으로 자신의 사역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드러내셨습니다. 19절,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는 말씀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이렇듯이 살리는 사역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살리신 일을 구약 성경을 보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님이 죽은 자들을 살리신 일 또한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살리는 사역의 최정점은 ‘부활’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살리는 일을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 연결하지만 복음서 저자는 이것을 ‘부활’이란 실체와 연결시킵니다. 몸은 땅에 썩지만 영혼은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산다는 개념에는 부활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은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은 몸을 포함한 총체적인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부활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살리는 사역은 몸의 부활을 포함한 전인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살리는 일은 구원을 의미하며 몸과 영혼을 다 포함합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얻는 구원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로서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은 부활을 내다보는 예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토록 몸과 영혼을 갖춘 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부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아도 성경에 나오는 사건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부활을 소망할 수가 있습니다.

아들을 통해 생명을 얻은 우리는 살리는 사역에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살리는 사역이란 예수님을 통한 생명을 사람들이 얻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증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살리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개인과 교회가 맡았음을 잊지 않고 매순간 되새긴다면 살리는 일은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