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5장19절-20절 “아들의 특권” 2020년 11월 9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안식일에 환자를 치료한 행위로 비난받던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칭함으로 유대인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게 됩니다. 또한 논쟁의 방향이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은 유일신론, 즉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시란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중 첫 번째인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 절대 계명입니다. 이런 신앙 입장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말을 듣자 유대인들은 분개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형에 해당되는 중범죄로 여겼습니다. 구약에서 다른 신을 섬겼던 유대인들이 개인 뿐 아니라 민족적으로 얼마나 큰 벌을 받았는지를 유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이 모든 사실을 다 아심에도 하나님과의 동등함을 강력히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욱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살해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변호하시는 것을 볼 때에 이것이 얼마나 예수님에게 중요했는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17절에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예수님은 19절에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고 하십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버지의 일이 아닌 것을 절대 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행위는 철저히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자신있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임에도 38년된 환자를 치유한 것은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 모든 주장의 근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예수님은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정해버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고 맙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행하시는 일이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들이신 예수님을 빼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온갖 오해와 왜곡에 우리를 빠뜨리는 가장 위험한 접근입니다.

하나님의 친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절대적인 특권을 갖고 계심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상태로 예수님을 이해하거나 구약을 읽으면 모든 것이 뒤틀리고 삐뚤어지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란 말씀은 아들의 특권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에 기초해서 우리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빼고 구약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 없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들이신 예수님의 눈으로 안식일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모든 유대인들은 이러한 시각으로 새롭게 안식일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에 해당되는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빼고 구약의 관점으로 안식일(주일)을 이해하는 위험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신 예수님의 특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