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5장17절-18절 “물러설 수 없는” 11/6/2020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안식일에 환자를 치유한 것을 노동의 행위로 보고 정죄한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박해가 아니라 응징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셨던 십계명 중 하나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을 어긴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안식일을 어긴 결과로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사건들이 있었기에 유대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어야 했을까요? 다른 날도 많은데 굳이 안식일에 환자를 치유함으로 유대인들을 적으로 돌려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의를 일으키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논리로 예수님이 너무 급진적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했다는 이유로 정죄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폭탄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엄청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설명합니다. 안식일을 범한 행위보다 더 심각한 죄를 예수님이 저질렀다고 유대인들은 판단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볼 때에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는 행위는 신성모독죄에 해당됩니다. 이것은 죽어 마땅할 정도로 심각한 죄목입니다. 화약고에 기름을 붓듯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서슴없이 건드리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예수님이 하셔야 했느냐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강대강으로 부딪힌들 서로 좋을 것이 없기에 유화정책을 써서 상대방을 진정시켜야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안식일에 치료한 행위는 하나님에게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제까지 일하시니”란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각인데 유대인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일하신다는 것은 구약과 상반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하셨기에 예수님의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내 아버지’란 표현은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칭한 것이기에 유대인들의 분노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결국 유대인들과 예수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충돌했던 것입니다. 둘 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중재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셨기에 예수님을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에 예수님을 거부하면 세상에는 어떤 구원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구약을 생명처럼 여겨도 예수님을 거부하면 구약과 유대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 정도로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압박하고 죽이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위축되거나 양보하실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신 결과로 세상에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기에 안식일에도 치유의 사역을 계속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에 일하신 예수님의 행위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른다면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러설 수 없는 신앙의 중요한 기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