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7절-9절 “장벽을 허물다” 10/9/2020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에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신 점을 본문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름길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음을 저자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 곁에서 쉬고 계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수가라 하는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쉬고 계신 것만 보면 단순한 휴식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여인의 등장으로 상황이 전혀 다르게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낮 12시란 언급도 그냥 시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님을 눈치챌 수가 있습니다. 7절,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란 묘사는 어찌보면 평범한 모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와 문화를 고려한다면 매우 낯선 상황입니다. 보통 이 시간에는 여인들이 우물가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우물가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한 유대인 남성이 우물 곁에서 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이 여인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을 것입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물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불편한 상황을 이겨내고 우물 곁으로 왔습니다.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그런데 통상적인 인사말은 생략하고 ‘물 좀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한 마디는 단순히 예수님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 앉아계신 이유를 드러내는 절묘한 한 수였습니다. 이 한 마디로 정적이 깨지고 뭔가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둘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인은 얼른 물만 얻고 집으로 돌아갈 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물 요청에 대한 여인의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습니다. 9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란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의 저자는 이 질문을 한 여인을 변호하듯이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여인의 질문이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시 사회적 배경에서는 예수님의 행동이 더 이상했다는 뉘앙스를 남긴 것입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온 것도 이상하지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했던 것입니다. 여인은 주변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무척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문의 여성이 여과없이 표출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예수님은 단순히 유대인 남성으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유대인 남성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걸 뿐 아니라 물을 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27절을 보면,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자들까지도 이 장면이 매우 낯설었던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 인종과 인종 사이의 장벽은 너무도 높고 두터웠습니다. 이것에 갇혀 있던 사마리아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우리도 이러한 장벽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누고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장벽을 더욱 높이 쌓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장벽을 허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견고한 장벽을 허무신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진정 믿고 따른다면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장벽 허물기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해낸다면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이 교회 안에 강력히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