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27절 “침묵의 시간” 10/20/2020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사마리아 땅 수가 동네에 있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쉬고 계셨고 그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다가 다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옵니다. 본문은 “이 때에”란 시간 부사를 사용해서 어떤 상황에서 제자들이 돌아왔는지를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낯선 여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들이 목격한 것입니다. 본문은 이 장면을 본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이상히 여겼다’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전혀 긍정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금기를 깨고 파격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을 본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 땅에 들어온 것도 불편한 일인데 사마리아 여인과 친밀한 대화를 할 뿐 아니라 아무도 우물가에 오지 않는 시간에 여인 혼자서 온 것도 이상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제자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25절,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란 묘사는 제자들의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을 지킵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들이 침묵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전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침묵하지만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복음서 저자는 마치 그들의 마음을 훤히 아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니이까”란 의문을 제자들이 하고 있었음을 본문 저자는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 상황이 얼마든지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독자로서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물을 달라’입니다. ‘왜 그녀와 대화하느냐’에 대한 답은 ‘내가 메시야임을 그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답을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답이 나올 지를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에 드는 의문들을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지만 침묵합니다. ‘묻는 자가 없다’는 본문의 묘사는 제자들의 침묵이 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이에 대한 어떤 말씀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표정과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의문들을 알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잠시 동안 이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설왕설래하며 의심을 더욱 키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한 오해와 왜곡의 노예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깎아먹는 쓸모 없는 불신을 차단한 것입니다. 지금 판단을 내리면 쉽게 오해할 상황에서 그들은 침묵함으로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신앙적인 교훈을 한 가지 얻게 됩니다. 침묵이 때론 성급한 판단을 막아주는 귀한 신앙 행위란 점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우리는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오해와 왜곡, 불신의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상황 파악이 완전하지 못하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함정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오해와 왜곡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론 침묵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볼 수 있는 인내의 침묵을 훈련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멋지고 훌륭한 신앙 생활을 해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성급한 판단으로 누군가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멀리 내다보며 오늘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우리의 영혼을 오해와 왜곡에서 구해주는 귀한 보물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