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25절-26절 “내가 그니라” 10/19/2020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주목할 것은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태도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유대인 남성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선지자로 인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는 선지자 이상의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25절,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란 여인의 언급은 대화의 상대가 매우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메시야 사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 시점에서 표현한 것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여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내가 아노니’는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확신 뿐 아니라 앞에 서 있는 유대인 남성이 메시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여인의 생각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는 여인의 말에서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예수님이 앞 부분에서 다 하셨습니다. 예배로 인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오랜 역사 속에서 다투어 온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예수님이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말해준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여인은 혹시나 이 사람이 메시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여인의 ‘메시야’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님은 매우 단호한 어조로 “내가 그니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여인은 ‘당신이 혹시 메시야인가요?’란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메시야가 오시면 대화의 상대인 유대인 남성이 말한 모든 것을 알려줄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내가 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긴 대화를 거치는 동안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언제 드러내실까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네가 기다리는 메시야가 나다’고 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사생활 부분에 대한 대화에서도 ‘내가 메시야이기에 너의 모든 사생활을 알고 있다’고 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의 입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나온 뒤에야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신 것은 이 시점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둘 사이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지만 여인은 대화 상대인 유대인 남성이 메시야임을 확신했습니다. 모든 의심을 거두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서 있음을 여인은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왕)란 선언은 이미 세상에 드러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과정들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실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너무 빨리 답을 손에 쥐려는 성급함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예수님은 메시야’란 답을 쥐고서 ‘예수님이 누구시냐’고 물으면 쉽게 이 답을 제시하는 습관은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인처럼 치열하게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거쳐 믿음에 이르는 것이 개인의 신앙에 큰 유익이 됩니다. ‘내가 그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커다란 울림이 될 때 우리는 진정 메시야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만 ‘예수님이 메시야’란 정답을 쥐고 있는 것은 메시야의 사람으로 거듭나는데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예수님이 나의 메시야(왕)’이라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진솔한 고백이 마음 깊이까지 파고들 때에 우리는 메시야의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