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10절-11절 “정말 알아야 할 것은” 10/12/202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간 이유가 이 만남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실체를 그 여인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접근법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여인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물’을 매개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란 사회적 장벽 앞에서 대화가 단절될 위기에 처합니다. 예수님은 거절의 의사를 밝힌 여인에게 답을 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도록 만드십니다.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입니다. 지금 물 좀 달라고 여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생수’를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인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라고 되묻습니다. 여인의 마음 속에는 물 길을 그릇이 없어서 지금 자신에게 물 좀 달라고 하면서 생뚱맞게 생수를 줄 수 있다고 하다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인은 오직 물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여인이 물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더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수 이야기를 하시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에게 구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 말에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채 오직 생수 이야기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알아야 하는 것에는 무관심하고 부차적인 것에 온 마음을 빼앗긴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이 여인에게만 국한된 것일까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예수님에게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에는 무관심한채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만 사력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는 않을까요?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만으로 예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여인이 물이 아닌 예수님에게 시선을 돌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계십니다. 당장 필요한 물의 소중함에만 정신을 쏟을 뿐 더 중요한 예수님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여인의 생각에 충격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인 “네가 알았더라면”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지만 우리는 지금이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인처럼 당장 필요한 물 문제에만 마음을 쏟지 말고 더 중요한 일인 예수님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결과인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을 것’이란 부분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앞 부분인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일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원인이 채워져야 결과가 자연스럽게 생기듯이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해결되어야 그 뒤에 따라오는 ‘구하는 문제’와 ‘생수를 얻는 문제’도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대상은 무엇인가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에서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하는 최고의 지점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의 현실 문제만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기도하는 것도 에수님을 알기 위함이 아니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뿌리임을 기억하고 이것을 위해 오늘도 예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