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4장 15절-19절 “사적인 영역까지도” 10/14/2020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물’을 주제로 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대화는 어정쩡하게 마무리가 되고 맙니다. 우물에서 얻을 수 있는 물과 예수님이 주실 수 있는 물로 나뉘는데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여인은 대화를 통해 확실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15절,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요청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허풍쟁이임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진짜 그런 물이 있다면 증명해보라는 식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물’을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있지도 않은 물로 장난치고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여인이 얼마나 못따라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여인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주제를 확 바꾸십니다. ‘물’이란 주제에서 ‘남편’이란 주제로 방향을 돌리십니다. 16절에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신 부분인데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당신에게 남편이 있느냐’고 물은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남편을 데리고 오라니 듣기에 따라서는 무척 무례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마디 요청이 가져온 파장은 매우 컸습니다.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고 답변을 했고 예수님은 곧바로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고 하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 상황에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2장25절,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여인의 속마음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황당하고 무례할 수 있는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요구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 한 마디로 인해 여인이 받았을 충격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앞의 유대인 남성이 도대체 누구길래 나의 사생활을 다 안단 말인가’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인은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앞의 ‘물’ 주제에서는 ‘선지자’란 단어가 나오지 않은 것만을 보더라도 ‘네 남편을 데려오라’는 요청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여인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들여다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우리의 어떤 사적인 영역도 숨길 수가 없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사생활 침해란 명분으로 예수님의 간섭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사생활이란 울타리는 예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의 사생활은 반드시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여인의 삶이 얼마나 부도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 때문에 여인은 아무도 없는 한 낮에 우물가를 찾은 것입니다. 다른 여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본 유대인 남성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사생활이 들춰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수치스러운 사생활 영역까지도 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사적인 영역까지도 씻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은밀한 죄도 예수님 앞에서 숨길 수가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예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사적인 영역도 예수님 앞에서 과감히 드러낼 용기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줍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떤 비밀도 없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