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우리는 주기도문 중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란 대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 자신이 이 기도대로 이 땅을 사셨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렇게 사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오늘 본문이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위로부터 오시는 이’ 또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저자는 이것을 ‘땅에서 난 이’와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누가 땅에서 난 이일까요? 좁게는 니고데모와 세례 요한일 것입니다. 넓게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자는 예수님과 기타 모든 사람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아무리 당대 유대 사회에서 니고데모가 바리새인과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명망이 높다해도 예수님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당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특별한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 앞에 나와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해도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세례 요한 자신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로 인정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로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신 것일까요? 32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들은 것이란 무엇인가요? 모두 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실현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것을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증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에 속한 이야기를 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동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세상에 증언하시기 위해 기적으로, 병고침으로, 귀신 축출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인데, 하나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 땅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32절,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늘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31절,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땅에 속한 이야기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땅에서 난 모든 이의 한계입니다. 그 예로, 니고데모가 ‘거듭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었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이와 땅에 속한 이 사이에는 이렇듯이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매꿀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이가 땅에 와서 하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만물 위에 계시는’ 분으로서 예수님은 이러한 놀랍고 위대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성육신과 땅에서의 삶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통해 하늘의 일을 이 땅에 펼치신 예수님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 것을 믿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늘에 속한 일을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땅에 속한 일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것들을 끊어내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서 사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묵상하며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에 낯설고 어설프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