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3장18절-21절 “정죄로부터 벗어나기” 10/1/2020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신뢰’입니다. 하지만 신뢰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입니다. 물론 두터운 신뢰까지도 그 무엇인가에 의해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지만 깊은 신뢰는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서 신뢰의 요소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는 대상에 대한 신뢰보다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떤 것을 얻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자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누군지 묻지 말고 그냥 믿어야 하는 것은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근거로 오늘 본문이 자주 인용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기서 ‘심판’은 ‘정죄’인데, 이것을 ‘지옥’으로 읽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16,17절에 나오는 ‘영생’과 ‘구원’도 ‘천국’으로만 읽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를 지옥과 천국으로만 해석하면서 공포심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본문의 저자는 지옥과 천국이 아닌 구원과 심판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 또는 구원을 얻고,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심판’에 대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믿는 자는 천국에, 불신자는 지옥에 넘기는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줄세워놓고는 ‘나를 믿느냐’ 물으면서 믿는다고 하면 천국행 티켓을 주고, 믿지 않는다고 하면 지옥행 티켓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 악한 행위를 숨기려고 빛을 싫어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란 말은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다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빛이 아닌 어둠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미 세상은 정죄를 받은 상태란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 심판을 면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뜻합니다. 그 정죄받음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믿으면 더 이상 정죄는 없고 대신에 영생을 얻습니다.
천국갈 사람과 지옥갈 사람을 가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심판을 받은 사람들을 그 정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자기의 악한 행위를 숨기기에 바쁜 불쌍한 죄인들을 빛의 세계 속으로 유입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기에 “진리를 따르는 자마다 빛으로 오나니”란 저자의 말은 명백히 옳습니다. 또한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을 나타내려 함”이란 말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시고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제부터 빛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빛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죽어서 가는 천국 또는 지옥의 개념 때문에 바로 여기서 빛의 혜택을 받는 삶을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사랑과 평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정죄로부터 벗어난 체험을 먼저 한 자로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강력히 증거할 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빛이 있고 그 빛은 정죄란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