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3장16절-17절 “이처럼 사랑하사” 9/30/202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이 밥먹어주냐’란 말이 있습니다. 밥이 사랑보다 더 현실적이란 뜻입니다. 사랑도 좋지만 밥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밥의 문제는 생존의 영역으로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그 다음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하면 이상과 현실에서 우리는 항상 현실을 우선으로 여깁니다. 현실이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에 이상을 추구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밥 보다는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탄이 사십 일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고 유혹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때 이렇게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예수님 자신을 통해 증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땅의 모든 문제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여기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빈부의 격차, 신분 차별, 노예 제도 등 수많은 나쁜 관행들이 버젓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예수님은 꿋꿋이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는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십자가의 죽음을 예수님은 감당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의와 악법을 뒤로 한채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완성하셨습니다. 당시 세상은 이것을 볼멘 소리로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밥 문제를 해결해 주느냐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한 하나님의 방식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신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커서 복음서 저자는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내놓으신 하나님의 행동이 ‘이처럼 사랑하사’의 실체입니다. 이같은 사랑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함축해서 말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적어도 우리만큼은 그 사랑을  조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밥 문제를 비롯한 세상의 가난, 질병, 빈부차 해결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멸망이 아닌 영생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멸망을 해결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제 멸망이 아닌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세상의 유한한 생명을 붙들고 살던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쥔 자로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이 아닌 구원을 얻은 자로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고도 넓은 사랑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 안에서 확인하면서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