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3장1절-4절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9/24/2020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너무 익숙한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흥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깊이 있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는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와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됨으로 인해 영적인 보물을 발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에는 생각해 볼만한 많은 영적 진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춘다면 그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읽을 때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데’로 시작합니다. 저자는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이름은 니고데모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 사람이 등장하는지 봐야 합니다. 2:23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니고데모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그를 ‘바리새인’과 ‘유대인의 지도자’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구약 성경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던 사람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최상위층에 속한 신분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용기를 내서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방문합니다. 그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밤 시간대에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에게서 온 선생으로 인정합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고 밝힙니다. ‘이 표적’은 2:23의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가리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보고 싶었고 자신이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 자신도 이스라엘의 선생인데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으로 인정하다니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깊이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지도자인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예수님에게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2:25에서처럼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어찌보면 칭찬들어도 괜찮을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 때문에 둘 사이의 대화는 길어집니다. 또한 니고데모의 속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는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으로 인정했지만 속사람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거듭남’이란 한 마디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듭남’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절묘한 한 수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니고데모는 이 단어에 걸립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의 ‘거듭남’ 이야기를 그는 ‘사람은 절대로 거듭날 수 없다’고 응수한 것입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논쟁으로 격화되고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정반대의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의 영적 시력이 전혀 없음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예수님 앞에 선 니고데모의 영적 시력은 제로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했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우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영적 시력이 제로 상태인데 여전히 뭔가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조금 시력이 생겼다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는 않고 있나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계십니다. ‘거듭남’ 외에 다른 단어로 우리의 부끄러운 영성을 드러내실 지 모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자랑하거나 칭찬듣기 보다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따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