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맥입니다. 단어, 구, 절로 이루어진 문장을 이해할 때 전후 문맥을 고려하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문맥과 상관없이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면 본래의 의미를 왜곡시킬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문맥을 고려해서 읽어야 합니다. 23절과 24절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24절이 설명해줍니다. 저자는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라면서 23절의 믿음의 반응을 의심의 눈으로 봅니다. 표적을 보고 믿은 것만으로 충분한가란 의구심을 내비친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 사람들은 믿음으로 반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가식적으로 믿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적의 진실성과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임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23절에서 ‘그의 이름을 믿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지만 24절은 그것과 반대되는 듯한 예수님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표적을 보고 믿은 이들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다시 보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을” 정도로 뭔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큰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저자는 1:12에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특별한 지위를 얻는다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2:23의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요? 2:11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제자들도 그를 믿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맥을 고려하면서 읽다보면 저자가 사용한 ‘믿음’이란 단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됩니다. 같은 ‘믿음’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문맥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즉, 2:23의 ‘믿음’은 1:12과 2:11의 ‘믿음’과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2:24의 예수님의 반응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2:23에서 표적을 보고 믿은 유대인들을 가짜 또는 위장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표적의 진실성과 그것을 행하신 예수님의 특별함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의 신뢰를 얻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은 이들을 신뢰하지 않은 것은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는 예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경각심을 갖게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끼리는 표적을 보고 믿었든 다른 것을 보고 믿었든 믿는다고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믿음의 반응만이 아니라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시면서 판단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 마음을 아신다는 예수님의 능력에 시비를 걸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의 판단으로 어떤 사람의 믿음의 진실성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두 세명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매우 단호한 어조로 예수님은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예수님의 표적 뿐 아니라 사람의 속마음까지도 아시는 예수님을 믿을 때 이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저자는 강조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저자는 묻고 있습니다. 우리도 속마음을 숨긴채 겉으로 드러난 믿음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적(기적)을 보고 믿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동원해서 예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는지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속마음으로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믿어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넌센스입니다. 우리는 전폭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동원해서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