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장17절-22절 “진리는 살아있다” 9/22/2020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을 갖고 살다가 그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할 때에는 과연 끝까지 진실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란 회의가 밀려오게 됩니다.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왜곡해서 공격할 때에는 비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세상이 두려워집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리를 끝까지 붙들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매우 위태로워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이야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참 메시아라는 점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보기에도 당황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채찍을 사용해서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고 환전해주는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리신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장면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문제는 더욱 커집니다. 성전 안에 있던 종교 지도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주장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면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고 따집니다. 이것은 권위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이것을 행할 권위가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표적을 보여주어야 그들이 인정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없습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무슨 표적을 보여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구는 함정을 파놓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십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이 성전을 먼저 헐어야 합니다. 그 뒤에 예수님이 사흘만에 그것을 다시 세우시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앞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뒤의 말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렇게 공격합니다.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이것은 그들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정신이 아니거나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과 비교할 때 성전 논쟁은 어찌보면 말다툼에 불과할 지 모릅니다. 실제로 일어난 것이 없이 말로만 성전을 헌다느니 사흘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느니 싸움을 하는 듯이 보입니다.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실 공방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헐 일이 없기에 사흘만에 다시 지을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고발한 자들은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마26:61)는 말로 공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예수님의 의도를 왜곡시켜서 공격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본문이 전합니다. 저자는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입니다. 제자들은 이 의미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깨닫게 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됩니다. 제자들은 유대 지도자들의 공격 앞에서 예수님의 진리를 붙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는 살아서 움직입니다. 당장은 오해받고 왜곡될 수 있지만 진리는 마침내 승리합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붙든다면 세상의 어떤 공격 앞에서도 당당히 이길 수 있습니다. 당장 증명하기 어려워 억울한 말을 들을지라도 진리는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냅니다. 예수님을 진리로 섬기는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