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장 1절-11절 “신뢰 쌓기” 9/18/2020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불가능한 일을 해낼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온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가 어느날 완치 판정을 받는다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 전체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체험하고 싶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물은 물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과학적으로 물이 포도주가 될 방법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니 무조건 믿자고 하면 되지만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물이 포도주가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떠오릅니다. 저자는 왜 딱 한 번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을까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물보다 포도주가 더 귀했다면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이 기적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되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속임수나 거짓이 가미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화학물질을 첨가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취한 것도 없습니다. 비어 있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채웠고 곧바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았고 하객들은 만족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궁금한 것은 언제 물이 포도주가 되었느냐입니다. 본문에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는데, 하인들은 어느 시점에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인지 알았지만 그 외 사람들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이상의 추측은 우리의 자유이나 본문은 침묵할 뿐입니다. 아무튼 신비로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인들이 따랐고 결혼식장에 있는 모든 하객들은 최상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모든 것을 망칠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해피앤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결국 예수님에 의해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기적을 기록한 이유를 분명히 제시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 기적을 통해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그를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일이 과연 가능하냐에 집중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것에 우리의 시선을 돌립니다. 이 기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저자는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약한 기적이라도 보여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이유로 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의 영광과 제자들의 믿음이 그것인데, 우리는 이 둘의 함수 관계를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 된 것에 놀란 하인들, 이유야 어쨌든 좋은 포도주 맛을 즐긴 하객들과 달리 예수님의 영광에 믿음으로 반응한 제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이 기적을 통해 재확인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는 것은 더 깊이 예수님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앞 장에서 제자들은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는 이 기적을 통해 더욱 확신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인격적 반응으로 더 깊은 신뢰를 쌓는 행위입니다. 전보다 더 신뢰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믿음의 반응입니다. 맹목적이거나 묻지마식 믿음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통해 더 깊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해 더 깊은 신뢰가 형성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