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받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냐 제한적인 사랑이냐를 놓고 의견이 충돌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개인적이고 체험적일 때 매우 강력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할 것입니다. 사랑이 이론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추상적이면 뜬구름 잡는 기분이 듭니다. 사랑은 관계적이고 상호적이며 실제적이어야 피부에 와닿을 뿐 아니라 마음에까지 전달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 본문에서 저자가 말한 “우리가 받으니”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받고 있느냐에 대한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4절에서 저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충만’이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뜻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입니다.
저자는 ‘받는다’는 말에 ‘은혜 위에 은혜’란 설명을 덧붙입니다. ‘받음’과 ‘은혜’의 연결은 우리의 오해를 불식시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보상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 하면 받는 상장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이겨 취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물과 땀이 묻어난 가치 있는 성과물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모세 율법과 비교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 은혜와 진리가 어떤 성격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모세로부터 온 율법의 성격은 어떠한가요?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키면 그냥 넘어가지만 지키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이 따릅니다. 법의 특성이 원래 그렇습니다. 법이 정해지면 그것을 지켜야만 합니다. 여기에는 은혜의 요소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서 온 은혜와 진리는 우리의 노고가 전혀 없는 철저히 거저 주시는 선물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우리는 은혜가 선물임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받으니’란 표현에 답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충만함에서 받는 ‘경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실제로 예수님에게서 은혜와 진리를 받아 누릴 때에 그것이 선물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고 마음이 움직일 뿐 아니라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은혜의 선물을 받는 실제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저자처럼 ‘우리가 받으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있어야만 우리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혜와 진리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저자가 말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오셨을까요?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끄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삶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데 이것을 위해 우리가 은혜와 진리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예수님에게서 온 것이며 하나님을 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입니다. 이 충만함을 받아 누리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