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에서 걷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이런 경우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불빛만 있어도 피할 수 있는 일이 어둠 속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둠이 아닌 환한 대낮에 사람이 활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태양에만 의존하던 시대에 낮에만 활동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낮과 밤이란 이미지를 사용해서 매우 중요한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낮에 다녀야 실족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입니다. 일반적인 상식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무엇을 강조하신 것일까요?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란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시간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하신 시점이 중요한데, 유대로 가시려는 예수님을 그의 제자들이 가로막는 상황이었습니다.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가시려는 예수님의 행동을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기 위해 낮과 밤 이미지를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낮이기에 실족할 일이 없을 것임을 강조하시면서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살벌한 위협만을 보고서 유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런 상황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활동을 막아설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9:4에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낮 시간인 지금 일해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실족시킬 수 있는 세력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마치 밤인 것처럼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유대로 들어가시려는 예수님을 가로막는 제자들의 마음은 이미 어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지금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둠 속을 걸어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심리 상태를 잘 아시는 주님은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면서 낮에 다니면 실족할 일이 없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신 것입니다.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으니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활동할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눈 앞의 장애물만을 본다면 마치 어두운 밤처럼 느껴져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몰라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마음과 생각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제자들이 바로 이런 심리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어붙은 그들의 마음을 녹이시기 위해 예수님은 낮과 밤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대낮임에도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둠에 지배당할 수가 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두려운 현실에 마음이 얼어붙어 전혀 움직이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가 아닐까요? 우리의 현실은 칠흑같이 어두울 수 있지만 대낮처럼 밝은 날이기에 절대 실족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4:8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란 담대함을 보인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아직 어둠이 오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힘차게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이 우리를 인도하기에 세상의 어떤 방해나 장애물도 우리를 실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낮에 길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담대한 신앙이 오늘도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