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를 자랑하는 택사스에 영하 18도라는 극심한 한파가 덮쳤습니다. 많은 지역에 전기와 물이 끊기는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파인지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몰라 그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저런 위기에 대비를 합니다. 보험에 가입하고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안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대비를 무색하게 하는 재난을 겪기도 합니다. 이것이 개인에게 닥치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한 가족 안에 불어닥친 위기를 어떤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그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긴급 요청을 합니다. 그들이 어떤 감정에 휩싸였는지를 본문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얼마나 당황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면 온 가족이 아파합니다. 집안 분위기는 침울해지고 웃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서로간의 대화는 줄어들고 마음은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답답해집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행히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찌보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마지막 방법을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이란 소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둘이 직접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대신 보내어 이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도 의외였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자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누가 봐도 죽을 병이라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심부름을 하던 사람 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이것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죽을 병에 걸린 이를 놓고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니 그들이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일반화시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함부로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발상 전환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함을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죽을 병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손길이 어떻게 미칠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교회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판세를 뒤엎는 놀라운 시각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삶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시키는 시각이기에 우리는 이를 가볍게 보면 안됩니다. 죽을 병에 걸린 이를 놓고 ‘이는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시각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비켜갈 수 없는 죽음과 질병 앞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결부시킬 수 있는 믿음을 우리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죽을 병이라는 커다란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지만 이것을 뚫고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식으로 발휘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막에서 물을 내시고 꽃이 피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삶의 위기는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한 치 앞도 예상못하는 우리의 안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에서 영원까지 시간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절망이 아닌 새로운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모든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