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장1절-3절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질 때” 2021년 4월 16일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아플 때의 마음 자세는 건강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어느날 갑자기 몸이 아프면 그 전날까지의 건강했던 삶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물론 조금 지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건강해져서 아팠을 때의 마음 자세 또한 쉽게 흐려집니다. 하지만 심각한 병에 걸린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한 가정에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와 ‘병든 나사로’ 그리고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등을 볼 때에 단순한 감기 정도가 아니라 회복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렸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나사로는 이 병으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병인지 왜 이렇게 심각해졌는지에 대해 본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본문이 비중있게 다루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를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로, 나사로를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로 본문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얼마나 돈독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과 험담을 고려한다면 이 남매의 신앙은 특별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둘의 사회적인 위치나 평판이 어떠하든 예수님과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고 평소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이들의 예수님을 향한 신앙이 어떠했는지가 예루살렘에 소문이 났을 정도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웠던 유대인들의 눈에 그들이 어떻게 비춰졌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38년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을 완치시켰고, 선천적 맹인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기대를 할 수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죽을 병에 걸렸어도 완치시킬 수 있다는 기대일 것입니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실제로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그들의 요청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였습니다. 이 말에는 즉시 와서 나사로를 치료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나사로를 예수님만이 치료하실 수 있다는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나사로의 처지가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그것이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을 꺾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에 시달릴 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은 비열하게 이것을 놓고 예수님을 조롱하기도 하고 우리의 신앙을 비웃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조차도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란 의구심에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사로처럼 젊은 나이에 죽을 병에 걸리는 일을 겪는다면 신앙이 무너질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불행도 겪지 말아야 옳은가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살다가 겪는 삶의 위기 속에서 여지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여 보시옵소서”란 말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하듯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플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연약한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 모든 것을 없애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게 만들어줄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빛이 납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갖는다면 주님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욱 담대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