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0장40절-42절 “한 줄기 빛은 더욱 강렬합니다” 2021년 4월15일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배부른 사람에게 진수성찬은 매력이 없습니다. 반면 배고픈 사람에게는 반찬 한 가지라도 소중합니다. 기독교 영성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영적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말씀이 들린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상태에서 들려지는 말씀은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예수님과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배부른 상태에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영적인 맹인 상태에 있는 줄도 모른채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여론전은 크게 성공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존경받는 위치를 적절히 활용해서 사람들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신성모독이란 죄목을 예수님에게 덮어씌워서 그가 하는 어떤 주장도 신빙성이 없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폄훼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일지라도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 유대인들이 보였던 냉담함과는 달리 요단 강 저편 지역에서는 영적인 뜨거움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지역을 방문하여 머무르는 동안에 일어난 영적인 변화입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이 얼마나 놀랍고 가슴벅찬 장면인지요.

먹구름이 온 하늘을 덮어도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처럼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 속으로 파고듭니다. 더군다나 이 복음을 이미 경험한 이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복음의 능력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을 보러 왔던 이들이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고 고백한 점을 의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더 이상 사역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증언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증언이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이들의 마음에 이미 세례 요한의 증언이 자리잡았다는 점은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교회가 사회에서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하게 사람들 마음 속에 복음을 비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교회가 게을리한다면 다른 일들을 아무리 잘해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출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듣고 있는 현실에서 복음의 빛이 오히려 차단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교회는 모든 불리한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 줄기 빛처럼 세상에 비추는 일입니다.

요한이 묵묵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증언했듯이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한다면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교회를 채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아무리 여론이 나빠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는 기적이 일어났듯이 지금도 복음은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의심한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세상에 남겨진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방식을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복음에 맞추어 살도록 보냄받은 이들입니다. 우리의 사명 의식을 고취시키려면 예수님의 복음이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하게 세상에 비춰지도록 우리가 복음의 일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복음은 지금도 세상의 어둠을 뚫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