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아무리 일란성 쌍둥일지라도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갖고 살아갑니다. 서로의 생각을 잘 아는 50년지기 친구일지라도 기질과 성품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일심동체라 말하지만 완전히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에 익숙한 우리가 어떻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표현은 ‘둘이지만 하나’란 의미인데, 예수님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요한복음5:1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정확히 같은 일을 행한다는 이 묘사는 하나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는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함께’와 ‘항상’이란 표현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둘이지만 하나이신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독립된 존재이나 모든 면에서 온전히 하나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사람이신 예수님이 이스라엘 하나님과 하나란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모세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란 했던 말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 주장은 하나님이 둘이 된다는 뜻입니다. 유일한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면 이 사실이 깨지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면 하나님이 둘이 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둘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둘이지만 하나란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 의견 불일치가 전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독립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하나이기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란 사실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하나님이시란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예수님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예수님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후에도 그 진리가 전혀 무너지지 않았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1:14)란 말을 이미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람이 되셨음을 강력히 외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두고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낀 자녀들처럼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느냐란 이상한 논리에 우리는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편을 들면 하나님이 서운해 하실 것 같고 하나님 편을 들면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실 것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두 분은 완벽히 하나이시기에 우리는 중간에 서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두 분 사이를 갈라놓고 경쟁시키거나 화해시키려는 이상한 노력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셨는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배제한채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우리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성장시켜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