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시험을 앞두고 핵심 요약을 정리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점수의 폭이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핵심을 꿰뚫는 일은 학교 공부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은 핵심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있어서 핵심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 점을 무척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영생’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 삶’입니다. 영생이 누구에게 주어지느냐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중요한 실제적인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아무도 줄 수 없는 선물인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생의 가치를 알아야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영생은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 삶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육체적인 죽음을 겪지 않고 영생 불사한다는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으로 이에 대해 답을 하셨습니다. 이는 영생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발판으로 삼아 다른 곳에 가거나 다른 삶을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과 한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한 몸으로 산, 바다, 사막, 늪, 고난, 죽음까지도 통과한다는 뜻입니다. 삶의 굴곡과 파도 속에서 예수님이 절대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는 이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님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상의도 없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과 한 몸인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위대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손과 예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존재가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죽음을 겪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영생은 철저히 예수님과 하나된 존재로 살아가는 삶의 전 여정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지금 여기서 시작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을 ‘영생’이란 단어가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말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얼마나 성경적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모습도 얼마든지 달라지기에 평생에 걸쳐 영생의 신비를 성경을 통해 이해하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는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기지 않을 축복의 삶을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영생이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서 이미 시작되었고 그 기간은 영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 과연 있을까요? 절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된 영생의 신비를 잊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한 몸으로 사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여기서 깨닫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