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0장27절 “누가 진짜 양인가?” 2021년 4월 7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흑백 논리에 빠지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흑이고 무엇이 백인지 분명히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니 편과 내 편을 나누는 진영 논리는 위험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 속하는지 구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예수님의 양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믿지 아니하는 이들에게 ‘너희는 나의 양이 아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영원히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내 양이 아니라는 말이지 절대 내 양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양이 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양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매우 분명한 기준점을 제시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를 따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의 우리’ 비유를 통해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비유(요10:3-4)에서 예수님은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와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양이라면 어떤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모습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듣고 따르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여기서 듣는 것과 따르는 것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듣지만 따르지 않는다거나 따르지만 듣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듣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려는 양의 최선의 자세이고, 따르는 것은 목자를 신뢰하는 양의 온전한 자세입니다. 목자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줄 알 때에 제대로 목자를 따라갈 수가 있기에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으려 했던 당시 유대인들은 그의 양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의 음성을 듣지 않기에 그를 따르는 일 또한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에 그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고 그를 따라 어디를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양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목자의 음성이 아니면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도망쳤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5절에서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인지 다른 사람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진짜 양인 것입니다.

양에게 들리는 음성 중에는 목자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음성도 섞여 있습니다. 이것이 양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엉뚱한 길로 빠지게 하는 함정으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그의 양들의 관계에도 얼마든지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섞여서 양들을 유혹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는 길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또 듣는 훈련을 계속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에 익숙해질수록 다른 이의 음성을 구분하는 실력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진짜 양이라면 그의 음성 듣기를 즐거워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적극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우리는 확실히 그의 양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나는 그들을 알며”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확실히 챙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잘 아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시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를 따르는 행복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양이 된 사실을 매일 확인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