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누군가가 신의 아들이라 주장하면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존재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와 달리 유대 사회는 유일신을 믿고 있었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신적인 위치에 올려놓는다면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설교는 적대적인 분위기를 뚫고서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음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를 신성 모독으로 몰아세워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쟁’이 있었다는 것은 찬반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고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던 분위기가 크게 변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전체 비율로 따지면 일방적일 정도로 열세였지만 예수님을 옹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대다수를 차지했고, 그들의 주장은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믿느냐”였습니다. 미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미친 사람으로 치부해버림으로서 사람들의 접근 자체를 끊어내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제정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의 말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웠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했고,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왔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듣는 이들이 생긴 것입니다. 영적인 파장을 일으켰음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새롭게 예수를 인식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마치 사막에서 생수가 터진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행위와 설교가 유대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막강했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볼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인식하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전체를 뒤흔들어놓을 기독교의 역사가 지금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전세계를 상대로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여주는 작은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도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도 예수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은 교회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위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인간으로만 인정하고 훌륭한 도덕 선생 정도로 보려는 세상의 평가에 어떤 이들은 다행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예수님을 높게 평가해줘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듯이 여전히 세상은 예수님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말들로 가득할 뿐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로서 강력히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 우리와 같이 연약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을 호령하실 만왕의 왕으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장차 세상을 심판할 왕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큰 그림을 마음에 품고 예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히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세상은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으로 인해 세상에 새로운 파장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