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한 사람의 의견 정도가 아니라 생명이 달린 일이라면 훨씬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을 향해 ‘영생’이 걸린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천적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영생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계심을 모든 이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터져나왔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대인의 비난과 폭력은 도를 넘을 정도로 거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비유를 설교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이야기인데 그 내용은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따른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양의 목자가 있는 반면에 양을 헤치는 절도와 강도도 있다는 점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인지, 타인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함을 이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목축 문화에서 누구나 관찰 가능한 장면을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신 것이라 유대인이라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를 다 듣고 나서 보인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6절,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예수님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니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로인해 예수님은 7절부터 자세히 이 비유를 해설하십니다. 물론 이런 해설로 인해 비유의 내용이 명확해진 것은 좋지만 이런 설명이 없다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매우 심각한 영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쉽고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줘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는 있지만 사실은 다른 음성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들어왔던 음성과는 이질적인, 아니 너무도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란 부분인데, 이것은 이해력 부족이거나 지적 능력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에 익숙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적 표현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맥을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하고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마음을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다른 음성에 사로잡혀 있기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도 마음에 전달되지 않는 이런 일은 지금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언제든지 펼쳐서 읽을 수가 있지만 다른 음성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금방 지루해질 뿐 아니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사로잡혀야 하는데, 이것이 안된 상태에서 그의 가르침을 들은들 어떤 효과가 생길까요? 우리는 평소 어떤 음성을 듣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마음을 열어놓고 그 진의를 파악하려고 온 신경을 기울인다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듣기 시작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게 되고 우리 삶을 온전히 그분에게 바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의 시작은 우리가 평소에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반대되는 목소리에 점령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하면서 예수님의 음성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