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장19절-28절 “야망 죽이기” 9/14/2020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우리는 더 큰 꿈을 가지라는 말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큰 동력입니다. 물론 미래는 고사하고 오늘 살기도 급급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장 자식들 굶기지 않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일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사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이렇게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며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더 큰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커다란 유혹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1세기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주목했던 유명인이었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당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습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사람들은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좋은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닙니다. 여하튼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던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법정에서 취조하는 듯한 질문입니다. 그들은 ‘너는 스스로 그리스도라 생각하느냐’란 함축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상대방의 위협이나 강압에 기가 죽어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함정 질문을 알아채고 일부러 거짓말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라면서 그의 진실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추종자들을 실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이들은 내심 그가 그리스도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찾아와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정치적인 야망이 있었다면 과연 그는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란 선명한 답 보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을 것입니다. 정치인의 어법을 사용해서 불분명한 답으로 위기를 모면할 뿐 아니라 추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과 추앙 앞에서 요한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소리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면서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진짜 메시아에게 돌립니다. 그는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요한은 진짜 메시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분을 위해 미리 길을 닦는 예비자에 불과합니다. 이같은 마음 자세가 모든 야망을 꺾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추종하든 견제하든 세례 요한은 자신이 할 일만을 묵묵히 해나갔습니다. 야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진실한 하나님의 소리로서 당시 모든 유대인을 향해 참된 메시아가 오셨음을 강력히 외쳤습니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리는 그의 모습은 이 시대 교회의 참된 자화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게 합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 뿐 아니라 꿈을 꾸는 모든 미래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재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야망을 죽이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우리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는 새로운 꿈을 가진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