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9절-11절 “자발적인 순종의 아름다움” 2021년 12월 31일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시몬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과거의 직업인 어부의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와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밤이 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날이 밝아지려는 시간에 바닷가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 멀리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의 말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자 그것을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심을 알자마자 곧바로 바다로 뛰어 내리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예수님은 이미 숯불 위에 생선을 놓으셨고 떡도 준비하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누군가를 가리켜 명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생선이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일곱 명의 제자들이 있었지만 베드로가 즉시 행동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6절과 비교하면 흥미로운데,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그물에 물고기가 많았다는 것인데 어떻게 베드로 혼자서 그물을 옮길 수가 있었는지 의아한 장면입니다. 어떤 학자는 베드로가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육지에 끌어 올렸다고 했는데, 본문은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 세 마리라”고 적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앉아서 숫자를 세고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아마도 그물에 있는 물고기를 육지에 쏟으면서 제자들이 합세해서 숫자를 센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또한 153마리의 큰 물고기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숫자가 그물에 잡힌 모든 물고기를 포함한 것인지, 아니면 육지에 꺼내놓은 숫자만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많다’는 것과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에 이보다 더 많은 물고기가 있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측과는 달리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베드로의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혼자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린 그의 행동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그의 각오를 느끼게 해 주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게만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잡은 생선을 다 가져오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그물을 통째로 육지에 끌어올렸습니다. 조급함이거나 성급함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이것 저것 잴 필요도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자발적인 순종은 이 장면을 읽는 모든 이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순종은 이와 같이 자발적일 때에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자발적인 순종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더욱 빛이 납니다. 억지로 하는 순종이거나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체면 때문에 하는 순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처럼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종을 마치 자유를 빼앗는 것처럼 왜곡시키는 시대이지만 예수님을 향한 순종은 자유롭게 우리가 결정해서 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에게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순종의 모습을 삶에서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