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들의 삶에 대해 요한복음서는 의외로 많이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초반에 몇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묘사가 있었지만 그들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사안일 경우에는 일부 제자들이 언급될 뿐이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주목을 받던 제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입니다. 하지만 이 제자에 대해서도 요한복음서는 그리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할만큼의 정보가 이 복음서 안에 들어있지 않기에 섣부른 추측은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는 있기에 이런 저런 의견들을 제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베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채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란 꾸중섞인 답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 말에 대한 해석을 학자들은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올 때’가 언제인지, ‘머문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확실한 것은 ‘그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은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모호한 언급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미리 안다는 것이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베드로가 ‘그 제자’의 앞 날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보여준 예수님의 반응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본인이든 다른 이들이든 상관없이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안다고 좋을 것은 없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는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제자’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상관하지 말고 그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만 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그 제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 사람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만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이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이든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예수님의 명령처럼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이 되어야만 진정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세밀함과 너그러움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앞 날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신앙 생활의 백미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다는 것은 이렇듯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때에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 제자’를 함께 묶어서 생각하지 않으셨듯이 우리 각자를 향한 인도하심도 각 사람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더 오래살고, 더 잘 살고,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신앙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오늘 여기서 따르는 것으로 평가할 때에 우리의 신앙은 좀 더 건강하게 형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은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가르침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주님을 따르는 성실함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앞 날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으로 확인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는 실제적인 헌신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 이 시대 모든 신자에게 가장 절실한 일임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