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사랑’이란 단어는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문화가 다르면 사랑의 표현 또한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사랑’은 신적인 요소가 가미된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에 이 단어는 특별했습니다. 요한복음서에도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요13:34)도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는 놀랍게도 죽음과 부활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받은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이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확인하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려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집착한 것도 아니고 사랑 결핍을 드러낸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사랑이 진실한가를 거듭 확인하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세 번째 같은 질문을 받자 이번에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감정적으로 ‘근심’했다고 본문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베드로의 마음이 다쳤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불쾌했다거나 화가 났다는 감정이 아닌 자신의 진실함을 알아주지 않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는 같은 답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라고 덧붙인 그의 말입니다. 앞의 두 번의 대답과 달리 이번에는 이 말을 더했습니다. 과연 베드로는 이 말을 왜 하였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주님이 아시지 않느냐고 말한 것은 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도 있지만 주님이 누구보다도 베드로의 속마음을 다 아신다는 신뢰가 묻어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십니다’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란 말이 더해지면서 주님을 향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분명했는지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주님 다 아시지요’란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에 이 말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진짜 우리의 속마음을 다 아신다고 믿기에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라고 하면서 베드로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진짜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 번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하셨지만 베드로가 마지막에 와서는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고 답함으로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음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마다 갖추어야 할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주님이 다 아십니다’란 진심어린 고백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쉽게 변질될 가능성을 항상 품고 사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주님이 다 아십니다’고 고백하는 마음만이라도 갖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도 이 말을 사용함으로 마음의 진심을 주님께 드러내는 일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