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시점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생선을 숯불에 올려놓고 떡까지 마련한 상태에서 제자들을 기다리셨습니다. 이런 상세한 묘사는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아침을 먹으라고 하신 이후 본문은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는 마치 제자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진술한 놀라운 내용입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신 예수님에게 감동한 것이 아니라 지금 눈 앞에 계신 분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이심을 의심할 수가 없는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읽어낸 것입니다. 더 이상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보았음에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의심의 싹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임을 암시해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마치 두 번 본 것으로는 확신이 들지 않던 제자들이 이제는 완전히 의심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아침 식사까지 준비하신 것을 보면서 남아 있던 의심의 작은 싹까지도 사라졌던 것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의 정체를 캐물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이 확실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도마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접 확인한 후에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이번에는 물고기를 잡으러 바닷가에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다는 제자들 중의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확인했던 도마까지도 아직까지 의심의 싹을 제거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이는 의심하는 제자들의 못난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번 보여주었다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제자들의 모습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대화도 해보고 손과 옆구리도 만져보게 하고 식사까지 준비해서 제자들 앞에 두는 것을 보고서야 의심의 싹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활 자체를 믿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의심의 싹 자체가 없을 정도로 확고하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임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라고 적고 있는 저자의 설명은 이것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을 알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안다’는 것은 ‘감히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더욱 더 철저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할 수가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주님이신 줄 알기 때문’에 그 어떤 의심의 공격을 받아도 방어할 수가 있게 된 것임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교회 안에만 부활을 가둬놓고 지내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교회 밖을 나가면 부활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안에 부활에 대한 의심의 싹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세상 앞에서 당당히 부활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 안에 부활에 대한 어떤 의심의 여지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