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는 입구에 놓여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곧바로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를 찾아갔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두 제자는 곧바로 무덤까지 달려갔습니다. 둘 다 무덤 안을 확인했는데 예수님의 시체만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그 두 제자가 보인 반응을 본문은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의 행동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지만 그들이 한 일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 것 뿐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의견들이 있었지만 본문이 제공하는 하나의 힌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는 요한복음서의 기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도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단지 시체가 없어진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이것을 해결할지를 놓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본문이 두 제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은 부활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입니다. 아무도 이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적고 있지만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더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수가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해주었어도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 가르친 부활에 대한 내용은 분명했습니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구약 성경이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 증언한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여러 번에 걸쳐서 자신이 죽고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은 여러 통로를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요12:24)를 들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 곁을 지금 떠나지만 곧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들도 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오심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부활하여 그들 앞에 나타나실 것을 예고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알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도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서가 부활에 대해 제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의도적인 언급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하지만 요한복음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부활 이야기를 깨달아야 함을 강력히 증거한 것입니다. 부활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여기서 짚어준 것입니다. 제자들이 눈으로 본 부활의 모습을 성경이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달된 것을 볼 때에 성경을 통해 부활을 확인하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부활을 눈으로 보아야만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이 본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기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부활의 사실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부활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이를 다른 이들에게 증거할 수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부활을 누구에게든지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역사적인 부활 사건을 목격자의 증언으로 기록해 놓았기에 우리는 지금도 이를 신뢰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