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예수님의 제자 중 이름이 아닌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로 불려진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두 번이나 ‘그 다른 제자’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랐던 제자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곁을 다른 이에게 내주지 않을만큼 열정적으로 그를 따랐던 제자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모든 제자를 아낌없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도 곁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어머니인 마리아를 맡겼을 정도로 신뢰를 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있던 이 다른 제자는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그는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는 가만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다급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그는 무덤까지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란 요한복음서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의 마음이 얼마나 급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무덤을 향해 달리던 그의 마음은 무척 혼란스러웠고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생각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정말 무덤에 없는지를 확인하고픈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한 그는 열린 무덤 안을 들여다 볼 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서는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라면서 그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했습니다. 밖에서 허리를 숙이고 무덤 안을 관찰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아니하였습니다. 물론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심정을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뭔가 겁이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러 왔음에도 무덤 안으로는 섣불리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의 마음에 뭔가 두려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혼자서는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심적인 공포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무덤 앞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은 예수님의 시체가 그 안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지만 자신 안에 스며든 두려움이 더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있는지를 빨리 확인하는 것이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그것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마음이 얼어붙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는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따라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무덤에 도착했던 그의 심적 상태는 도저히 혼자서는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까지도 곁에서 지켜봤던 ‘그 다른 제자’가 무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 하나로 그의 곁을 지켰던 그의 마음이 무덤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뒤덮어서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무덤과 시체 앞에서 멈추어버린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있지만 어떤 약점으로 인해 그것이 멈출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약점이나 두려움이 우리의 신앙을 옭아매는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어떤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식어버리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갖는 약점입니다. 우리의 숙제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약점을 이겨내고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은 그 무엇으로든 막힐 수가 없을 정도로 더욱 강력해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