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29절 “보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2021년 12월 24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도마가 그의 죽음 앞에서 깊은 슬픔에 젖어 있다가 부활의 소식을 듣고서 그 사실을 부정해버린 모습을 요한복음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부활을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던 그가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보고 나서는 매우 강한 어조로 신앙 고백을 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을 예수님이 들어주신 것 같아 보입니다. 부활의 몸을 나타내신 후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어찌됐든 도마가 믿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확실히 믿음의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이렇듯이 의심과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믿음의 사람이 된 도마의 모습은 요한복음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의 믿음을 의심하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것처럼 읽힐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도마의 믿음을 부정한 것도 아니고 의심한 것도 아닙니다.

도마는 보고 믿었지만 그 후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함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도마처럼 고집스럽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어야만 믿겠다고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시대가 올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마처럼 보고 믿는 것은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경험일 뿐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제자들이 본 것을 기초로 부활의 몸을 보지 않고도 믿음으로 반응해야 함을 강력히 전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의 행렬이 얼마나 길게 펼쳐질지에 대해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보면 그 행렬에 동참한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부활의 몸을 보았음에도 그의 서신서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이만큼 묘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몸을 눈으로 확인했지만 그것이 믿음의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이렇게 밝힌 것입니다. 오히려 보지 못해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신앙인들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믿는 것에 익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증거가 있어야만 믿는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증거가 없으면 믿어주지 않는 시대 정신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고 믿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교회의 책임은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 시대 교회는 보지 못하고 믿는 이들로 채워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보고 믿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셨던 말씀처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을 복되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믿는다고 하면서 과학적인 사고가 마치 최고의 지성인양 주장하는 이 시대에 교회는 보지 못하고 믿는 신자들을 길러내고 그들로 세상에 나가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증거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마저 보고 믿는 것에 함몰되어 눈으로 확인하는 신앙만을 부추기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전에도 예수를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사랑했듯이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했던 초대 교회 신앙인들처럼 우리도 그런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만이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