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22절 “성령을 받으라” 2021년 12월 17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고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의 평강을 전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신 것을 놓고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장면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이 때 실제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해석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은 장차 있을 성령 강림에 대한 상징적 대표성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명령이 있었다고 해서 즉시 그것이 실행된 것은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령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것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특별히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 다음에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감당할 사역이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령의 동행하심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요한의 물세례를 받았을 때에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지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여러 차례에 걸쳐 기록한 내용은 있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4장-16장은 예수님의 성령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요16:7)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이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곁을 떠나 하늘로 올리워 가시는 순간이 다가옴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장차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후에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깨달음을 우리는 베드로, 요한, 바울 서신서에서 충분히 접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이 제자들 사역에 있어서 대체 불가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사역을 세상 속에 심으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 일이 제자들의 힘과 실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제자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사도행전이 강력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제자들의 사역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 사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은 단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실력과 물질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하나의 보조 수단에 불과합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어야만 교회는 본래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어놓아야 할 예수의 복음 이야기는 성령의 설득과 감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라면서 성령의 역사를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이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만이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말과 능력이 아닌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 속에 심는 일을 지속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