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잘 묘사해주는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란 대목입니다. 스승인 예수를 죽인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던 제자들은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스승이 죽고 난 이후에 이 두려움은 극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모임을 절대 비밀로 했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든 문을 걸어 감궜을 정도였습니다.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는 것은 안에서 열어주어야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보안을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당시 사회 권력층의 횡포에 맞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제자들의 두려움은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믿고 따르던 스승은 십자가란 처형에 죽임을 당했고 권력자들의 박해에 저항할 힘도 없었던 상태에서 제자들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증에 시달린 상태에서 제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짙은 어두움 속에서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하는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두려운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문이 굳게 닫힌 상태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그 안으로 들어오신 것인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몸이기에 가능하다고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성질의 몸이란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공간에 갇혀 있는 몸과는 완전히 달랐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평강’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부활의 몸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에 본문이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이 주목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평강’을 주시느냐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에서 주어진 평강을 본문이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힘으로는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이길 수가 있음을 암시해준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모든 두려움을 헤쳐나갈 수가 있음을 실제로 제자들이 체험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감정적인 반응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 문제가 생길 정도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평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십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온갖 박해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독특한 용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 때문임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평강이 주는 기쁨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빌립보서를 썼는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면서 주님 안에서 평강의 기쁨을 누릴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기쁨이 우리로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를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기쁨을 간절히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