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12절-16절 “본질 흐리기” 9/21/2020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융통성이 있다는 말은 보통 칭찬으로 들립니다. 반면에 고지식하다는 말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옛 것을 지키려고 할 때 듣는 말이 ‘고지식하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해서는 안되는 가치를 지킨다면 이것 또한 융통성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이야기는 융통성이 없는 예수님의 고지식한 모습으로 읽힐 수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시대적인 요구에 맞춰 도입한 새로운 제도를 예수님은 온 몸으로 거부하셨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성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이 가까왔을 무렵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는 노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책상을 엎으셔서 돈을 바닥에 쏟으셨습니다. 이것은 폭력적인 행동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교회도 언제든지 불의에 맞서 폭력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당시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파는 것과 돈을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매번 성전에 오실 때마다 이와 같이 행동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의 행동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 전에도 이런 장면을 많이 보셨지만 이번처럼 행동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셨을까요? 비둘기 파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인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의 과격한 행동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력히 요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전이 장사꾼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집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전 권위자들의 허락 하에 합법적으로 희생제물을 팔고 돈을 바꾸는 일을 했다고 말입니다. 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 온 순례자들을 돕는다는 숭고한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당차게 따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볼멘 소리는 본질 흐리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 정당성을 피력해도 결국 장사한 것입니다.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뚫고 추상같은 목소리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외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외침은 이번 한 번 뿐이 아니라 계속해서 외쳐져야 할 신앙의 본질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행할 거룩한 일들을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의 욕망이 얼마든지 꿈틀거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집이라는 거룩한 장소에 장사라는 세속적인 욕망이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습니다. 모양과 형태,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거룩한 예배에 인간의 더러운 욕심이 덧칠해져 신앙의 순수성이 깨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전을 깨끗이 하신 예수님의 행동에 담긴 깊은 의미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라는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집이란 거룩한 진리로 맞서야 합니다. 우리의 만족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오지 않도록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마음가짐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는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마음과 자기 만족이라는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뼈를 깎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흐리려는 모든 유혹을 하나씩 뽑아내야 합니다. 이처럼 예배자로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예배의 본질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