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행악자로 고발당한 예수님은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숨기지 않고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요18:36)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군인들로 하여금 이를 마음껏 조롱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면서 동족에게 버림받아 죄수의 신분으로 법정에 서 있는 예수의 모습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형을 시킬만한 죄를 찾을 수가 없었던 그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죄가 없다고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유세를 하듯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법으로는 죽어 마땅한 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유대인들과 달리 그는 신의 아들이란 말에 움찔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로마 사회를 뒤덮고 있던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신화에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말을 그가 했는데 “너는 어디로부터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 때에 그는 이미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듣고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입니다. 도대체 앞에 있는 이 예수란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인지가 새삼스럽게 궁금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셨습니다. 빌라도가 물었던 ‘너는 어디로부터냐’란 질문에 오래 전부터 공개적으로 답을 하셨던 것입니다. 과연 빌라도만 이 사실을 듣지 못했던 것일까요? 정말 그가 몰라서 이 질문을 한 것일까요?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빌라도의 질문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대답할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줄 빛이라고 하셨듯이 빌라도에게 얼마든지 다시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의도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정치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고 사람들의 환호만을 추구하는 자임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고 있음을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 치켜세우면서도 군인들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조롱하게 해서 정치적 이득을 취했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아셨기에 대답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로 인해 곤란해지지 않으려고 했고 그를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고만 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한 빌라도의 모습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그렇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의 사악함이 얼마나 큰 지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주었을 때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빌라도가 지금 예수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찢어 상하게 하고 있는 것에 적용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를 알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는 예수님을 해치는 사람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가룟 유다처럼 말입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는 골치아픈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고 설령 하나님의 아들이라해도 그의 눈에는 보잘 것이 없는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귀한 진리를 전해줘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아는 이에게만이 진리는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